Boy's Diary2015.12.04 06:37



요즘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세상과는 정반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매달려 있거나 벽에 붙어 있는 줄만 알았으니깐.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들은 여전히 내 하루중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누워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최대한 고개를 돌려봤자 항상 비슷한 각도에서 멀찌감치 보이던 장소들과 물건들에 조금씩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요즘 난 너무 기쁘다. 나는 심지어 만질 수도 있고 무슨 맛인지도 느낄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손바닥에서 거미줄이 나와야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것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좀 미안하지만 머리 위에서 똑같은 표정으로 흔들거리고 있는 동물 녀석들에게는 좀 싫증이 났다. 특히 몇 달 내내 팔을 벌리고 낙하산에 매달려 있는 토끼는 피곤하지도 않은건지. 온 종일 눈을 뜬 채 잠도 안 자고 입은 꾹 다물고 있다. 내가 심심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거라면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누워서 빈둥 거리기만 하는 듯 보이는 그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유익하게 보냈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거다. 난 하루종일 누워서 질문과 상상을 거듭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딸그락 딸그락 거리면서 엄마를 급히 달려가게 하던 그 녀석은 무엇이었을까. 아빠는 어디로 사라져서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 밥 먹고 올게 하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서 밥을 먹는걸까. 엄마 아빠가 먹는 밥이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새로운 것을 알게되는 하루하루가 신이 난다. 엄마 아빠는 저기쯤에서 밥을 먹는구나. 엄마가 물을 끓일때 요란하게 딸랑거리는 커피포트는 저렇게 생긴거였구나. 아빠는 바깥에 나갔다가 항상 저렇게 커다란 구멍을 열고 나타나는 거였어. 새로운 세상에서는 좋은 점이 한가지 더 있다. 모두가 내가 점점 살이 찐다고 기뻐하지만 내가 뚱뚱해지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가만히 누워서 먹기만 해야 했을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발차기였는데 이제 드디어 좀 더 힘든 운동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내일은 왠지 소파 근처까지 갈 수 있을것 같다. 가서 꼭 엄마의 발을 간지럽혀야지. 

(기어가려 애쓰는 아기 옆에서 함께 운동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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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